해외 발주처와의 제작 계약서에는 거의 예외 없이 보험(Insurance) 조항이 붙습니다. 그런데 이 조항을 받아 든 프로덕션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대개 "우리 영업배상책임보험 증권 있으니 그거 보내면 되겠지"입니다. 문제는 계약서가 요구하는 것이 증권의 존재가 아니라 특정한 담보 구조와 부대조건이라는 점입니다.
검토 사례 (익명)
- 계약자
- 국내 영상 프로덕션 (광고 제작·에이전시 업무)
- 발주처
- 해외 소재 글로벌 온라인 플랫폼 본사
- 업무
- 브랜드 캠페인 광고 영상 다편 제작 및 에이전시 업무
- 현장
- 국내 호텔 2개소·세트장 / 촬영 2일
- 계약 요구
- 발주처 추가피보험자 지정 · 우선비분담 · 대위권 포기 · 영문 보험가입증명서
- 쟁점
- 단일 증권으로는 메워지지 않는 담보 공백 / 배상청구기준 소급담보일 / 담보 중복 정리
영업배상책임(CGL)이 담보하지 않는 것
영업배상책임보험은 시설과 업무 수행 과정에서 제3자에게 발생한 신체상해·재물손해를 담보하는 증권입니다. 촬영 현장에서 조명이 넘어져 행인이 다치거나 장비가 호텔 로비를 파손한 경우가 전형입니다.
그런데 광고 제작사의 손해배상 위험은 대부분 현장이 아니라 화면 안에서 발생합니다. 그리고 그 영역은 대부분의 영업배상책임 증권에서 전문직업배상 면책 조항과 데이터·사이버 면책 조항으로 명시적으로 빠져 있습니다.
| 위험 국면 | 영업배상책임 단독 | 필요한 설계 |
|---|---|---|
| 촬영 현장 제3자 상해·재물손해 | 담보 | 시설소유관리자·도급업자 기본 담보 |
| 제작 스태프의 업무상 재해 | 근로자 상해는 기본 면책 | 사용자배상책임 특약 별도 부가 |
| 임차한 촬영장소·장비 손해 | 수탁물·임차물 관련 면책 소지 | 임차자배상·수탁물 조건 개별 확인 |
| 저작권·상표·타이틀 침해 | 전문직업배상 면책으로 제외 | 미디어 전문직업배상 (Producer's Liability) |
| 초상권·명예훼손·프라이버시 | 제작물 관련 청구는 제한적 | 미디어 전문직업배상 |
| 미허가 음원·소재 사용 | 미담보 | 미디어 전문직업배상 + 클리어런스 증빙 |
| 개인정보 유출·네트워크 사고 | 데이터·사이버 면책으로 제외 | 사이버 배상책임 |
영업배상책임은 촬영장에서 벌어진 일을 담보하고, 미디어 전문직업배상은 화면에 실린 것을 담보합니다. 둘은 서로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3층으로 나누어 설계한다
이 사례에서는 계약서가 요구한 담보를 아래 세 개 층으로 분해한 뒤, 각 층의 경계에서 빠지는 부분이 없는지를 역으로 점검하는 방식으로 설계했습니다.
영업배상책임 (CGL) — 사람과 물건
촬영 장소·기간·업무 내용을 증권에 특정해 기재합니다. 제작 스태프에 대한 사용자배상책임은 기본 담보가 아니므로 별도 특약으로 부가해야 하며, 임차한 촬영장소와 장비에 대한 수탁물·임차물 취급이 어떻게 처리되는지는 증권별로 반드시 개별 확인이 필요합니다.
미디어 전문직업배상 — 화면에 실린 것
저작권·상표·타이틀 침해, 초상권·프라이버시 침해, 명예훼손, 미허가 소재 사용 등 제작물 자체에서 비롯되는 청구를 담보합니다. 담보 대상 제작물(Insured Production)을 증권에 특정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며, 배상청구기준(claims-made)이라는 점이 설계의 핵심 변수가 됩니다.
사이버 배상책임 — 정보와 시스템
제작 과정에서 취급하는 출연자·스태프 개인정보, 발주처로부터 받은 미공개 자료, 편집 원본 데이터가 대상입니다. 영업배상책임에서 데이터·사이버가 면책으로 빠져 있는 만큼, 이 층을 비워 두면 계약상 요구를 형식적으로만 충족하게 됩니다.
층이 겹치는 지점 — 미디어 담보의 중복 정리
실무에서 자주 놓치는 부분입니다. 사이버 증권에도 미디어 배상책임(Media Liability) 담보가 옵션으로 들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별도의 미디어 전문직업배상을 함께 가입하면서 이 옵션을 그대로 두면, 같은 위험에 두 개의 증권이 걸치면서 사고 시 어느 증권이 우선하는지, 자기부담금은 어느 쪽 기준인지를 두고 다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 사례에서는 미디어 위험을 전문직업배상 증권 하나로 모으고, 사이버 증권의 미디어 담보는 설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정리했습니다. 담보를 늘리는 것보다 중복과 공백의 경계를 명확히 긋는 것이 청구 단계에서 훨씬 실질적인 차이를 만듭니다.
계약서가 요구하는 것은 증권이 아니라 '부대조건'입니다
해외 발주처의 보험 조항은 한도액만 요구하지 않습니다. 아래 조건들이 증권에 실제로 배서되어 있지 않으면, 한도를 충족해도 계약 위반이 됩니다.
| 부대조건 | 의미 | 없으면 |
|---|---|---|
| 추가피보험자 (Additional Insured) | 발주처를 피보험자로 추가 지정 | 발주처가 함께 피소돼도 이 증권으로 방어 불가 |
| 우선비분담 (Primary & Non-contributory) | 발주처 자체 보험보다 이 증권이 먼저 대응 | 발주처 보험과 분담 다툼 발생 |
| 대위권 포기 (Waiver of Subrogation) | 보험사가 발주처에 구상하지 않음 | 보험금 지급 후 발주처에 구상 → 계약 분쟁 |
| 영문 보험가입증명서 (COI) | 발주처 제출용 영문 증명서 | 국문 증권만으로는 계약 이행 입증 곤란 |
| 해지·변경 사전통지 | 증권 해지 시 일정 기간 전 서면통지 | 계약 요구 미충족 |
이 부대조건들은 청약 단계에서 미리 요청해 배서로 반영해야 합니다. 증권이 발행된 뒤에 추가하려면 배서 절차와 인수심사를 다시 거쳐야 하고, 그 사이 촬영이 진행되면 계약상 요구를 충족하지 못한 상태로 현장이 돌아갑니다.
실무에서 가장 자주 놓치는 세 가지
① 소급담보일이 프리프로덕션보다 늦으면 기획 단계가 빈다
미디어 전문직업배상은 배상청구기준 증권입니다. 소급담보일 이전에 수행한 업무에서 비롯된 청구는 보험기간 중에 제기되더라도 담보되지 않습니다.
광고 제작에서 저작권·초상권 문제는 촬영 당일이 아니라 기획·시안·캐스팅·소재 선정 단계에서 만들어집니다. 촬영 개시일을 소급담보일로 잡으면 정작 위험이 발생한 구간이 통째로 빠집니다. 소급담보일은 프리프로덕션 착수일 이전으로 설정되어야 합니다.
② 촬영은 이틀, 청구는 온에어 이후에 온다
제작 기간이 짧다고 해서 위험 노출 기간이 짧은 것이 아닙니다. 저작권·초상권 청구는 대개 광고가 실제로 노출되기 시작한 뒤 제기됩니다. 배상청구기준 증권은 청구가 제기된 시점에 증권이 살아 있어야 담보되므로, 캠페인 노출 기간 동안 소급담보일을 승계하며 계속 부보를 유지해야 합니다.
제작 완료와 동시에 증권을 종료하면, 정작 청구가 들어오는 시점에 담보가 없는 상태가 됩니다. 다만 갱신 여부는 매년 보험회사의 인수심사에 따르므로, 계속 부보를 사전에 확약할 수는 없습니다.
③ 클리어런스 증빙을 제출하면 빠지는 면책이 있다
미디어 전문직업배상에는 타이틀 서치나 미허가 음원 사용에 관한 면책 조항이 조건부로 붙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조항들은 상당수가 "클리어런스 증빙을 제출하면 삭제 가능"이라는 단서를 달고 있습니다.
즉 타이틀 서치 결과와 음원 라이선스 계약서를 정리해 제출하는 것만으로 담보 범위가 실질적으로 넓어질 수 있습니다. 이 단서를 읽지 않고 증권을 그대로 받아 두면, 가장 청구가 잦은 영역이 면책으로 남은 채 캠페인이 집행됩니다. 서류 작업 하나가 담보 범위를 바꾸는 드문 지점입니다.
수주 전에 확인할 체크리스트
- 계약서 보험 조항의 요구 종목이 몇 개인지 먼저 센다 (한 종목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 요구 한도가 1사고당인지 연간 총액인지 문언으로 확인
- 추가피보험자·우선비분담·대위권 포기 요구 여부와 대상 법인명 확정
- 미디어 담보의 소급담보일이 프리프로덕션 착수일 이전인지
- 담보 대상 제작물이 증권에 특정되어 있는지 (편수·캠페인명 포함)
- 사용자배상책임(스태프)·임차 촬영장소 취급이 별도 특약으로 반영됐는지
- 사이버와 미디어 담보의 중복 구간이 정리됐는지
- 영문 보험가입증명서 발급 가능 여부와 소요 기간
- 캠페인 노출 기간 동안의 계속 부보 계획
왜 브로커를 거치는가
이 사례의 어려움은 어느 한 종목이 특별히 까다로웠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세 개의 증권을 서로 다른 심사 라인에서 동시에 진행하면서, 그 사이의 경계를 맞추는 일이 본질이었습니다. 담보 대상 제작물 표기, 소급담보일, 추가피보험자 법인명, 미디어 담보의 중복 정리가 세 증권에서 일관되게 맞물려야 발주처 제출 단계에서 반려되지 않습니다.
보험중개사는 보험업법 제89조에 따라 계약자 측을 대리합니다. 계약서의 보험 조항을 담보 요건으로 번역하고, 복수의 보험회사에 동일 조건으로 인수심사를 의뢰하며, 부대조건 배서와 영문 증명서 발급까지 한 흐름으로 관리하는 것이 그 역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