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계약의 보험 조항은 대개 표 형태입니다. 종목과 최소 한도가 나란히 적혀 있어 얼핏 단순해 보입니다. 그런데 그 표 아래 이어지는 일반 조건 문단에 실제 난이도가 숨어 있습니다. 국내에서 견적을 받아 한도를 맞춰 놓고도 발주처 제출 단계에서 반려되는 일이 반복되는 이유입니다.

검토 사례 (익명)

계약자
국내 기계 제조·설치 기업
발주처
미국 동부 소재 식품가공 기업
업무
설비 제작·수출 및 현지 설치 — 설계책임 포함(design-build)
기간
약 30주 · 국내 제작 후 현지 시공
요구
영업배상책임 · 근재/사용자배상 · 자동차 · 우산 · 설계책임 · 설치공사 보험
쟁점
미국 내 인가 요건 / 추가피보험자 배서 종류 / 과거 산재이력 고지 / 적하 담보 중복

먼저 가르는 기준 — 어디서 발행된 증권인가

미국 보험은 주(州) 단위로 규제됩니다. 그리고 계약서의 일반 조건 문단에는 거의 예외 없이 보험회사에 관한 요건이 붙습니다. 신용등급 요건과 함께 해당 주에서 인가받은 보험회사일 것을 요구하는 문언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문언이 있으면 국내 보험회사가 발행한 증권은 종목과 한도가 아무리 맞아도 그 항목을 충족하지 못합니다. 국내 증권은 미국 기준으로 인가받지 않은 보험회사의 증권이기 때문입니다.

계약서에서 찾아야 할 문언 — 보험회사의 신용등급 요건과 해당 주 인가 여부 Insurers shall be rated not less than A- VII by A.M. Best and licensed to do business in the State of … 앞부분(등급)만 보고 뒷부분(인가)을 넘기는 일이 자주 있습니다.

특히 근재는 대체가 되지 않습니다

미국의 근로자재해보상(Workers' Compensation)은 주법상 강제이며, 거의 모든 주에서 해당 주 인가 보험회사의 증권을 요구합니다. 국내 산재보험이나 해외근로자 재해보장책임보험은 한국 제도의 담보이지, 미국 주법상의 근재 의무를 이행하는 수단이 아닙니다.

국내 근로자를 파견하는 구조라면 두 갈래를 동시에 봐야 합니다. 국내 제도상의 보장과, 미국 현지에서 요구되는 근재 의무는 서로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어느 한쪽만 준비한 채 현장을 시작하면 계약 위반과 현지 규제 위반이 함께 발생할 수 있습니다.

가장 흔한 오해

"한국에서 근재 들었으니 됐다"

증명서를 제출하는 단계에서야 반려되고, 그 시점에는 이미 인력 파견 일정이 확정돼 있습니다. 현지 조달에는 사업자 등록 상태·인원·직무 분류 등 사전 확인이 필요해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리는 항목이기도 합니다. 계약 검토 단계에서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종목이 여러 개인 이유 — 각자 다른 구멍을 막습니다

요구 종목이 많다고 해서 과잉이 아닙니다. 각 종목은 서로 다른 국면을 담보하며, 하나가 빠지면 그 국면이 그대로 노출됩니다.

요구 종목담보하는 국면빠지면
영업배상책임
(CGL)
현장 작업 중 제3자 신체상해·재물손해, 인도 후 완성작업 위험현장 사고와 준공 후 하자로 인한 제3자 손해
근재 / 사용자배상
(WC / EL)
근로자 재해 보상 및 사용자 배상책임주법 위반 소지 · 현장 출입 자체가 거부될 수 있음
자동차
(Auto)
현지 차량 운행 중 사고임차·소유 불문 현지 운행 위험
우산 / 초과
(Umbrella)
기초 증권 한도를 넘는 부분요구 한도 미달 — 기초만으로 못 맞추는 경우 다수
설계책임
(E&O)
설계·엔지니어링 오류로 인한 순수 재산손해CGL의 전문직업배상 면책으로 통째 노출
설치공사
(Builder's Risk / 설치)
설치 중 목적물 자체의 손해배상책임이 아닌 물건 자체의 손해 — CGL로 담보되지 않음

설계책임과 설치공사 보험은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하나는 남에게 입힌 손해를, 다른 하나는 내 물건이 입은 손해를 담보합니다. 둘 다 CGL 밖입니다.

design-build이면 설계책임이 반드시 따라옵니다

단순 납품이 아니라 설계까지 수급인이 책임지는 구조라면 설계 오류로 인한 손해가 계약자에게 귀속됩니다. 그런데 이 손해는 대개 사람이 다치거나 물건이 부서지지 않은 채 발생하는 순수 재산손해이고, CGL 증권의 전문직업배상 면책으로 빠집니다.

계약서에 design-build, engineering, shop drawing 같은 표현이 있다면 설계책임 담보가 요구 목록에 없더라도 별도로 검토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추가피보험자 배서는 한 종류가 아닙니다

미국 계약에서 가장 자주 누락되는 지점입니다. 발주처를 추가피보험자로 지정할 때, 진행 중 작업(ongoing operations)에 대한 배서와 완성 작업(completed operations)에 대한 배서는 서로 다릅니다.

전자만 받아 두면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은 발주처가 담보되지만, 준공 이후 하자로 제3자 손해가 발생해 발주처가 함께 피소되는 국면에서는 담보가 빠집니다. 그런데 설비 설치 계약에서 분쟁이 실제로 터지는 시점은 대개 준공 이후입니다.

계약서가 두 가지를 모두 요구하는지, 증명서에 두 배서가 모두 기재되었는지를 제출 전에 대조해야 합니다. 증명서에 배서 번호가 병기되는 형식이 일반적입니다.

함께 확인할 일반 조건

조건의미
우선비분담발주처 자체 보험보다 계약자 증권이 먼저 대응. 분담 다툼을 막는 조항
대위권 포기보험금 지급 후 발주처에 구상하지 않음
해지·변경 통지일정 기간 전 서면통지 의무. 증명서 문구와 실제 증권 조건이 일치해야 함
한도의 성격Limits shall not be deemed to limit liability — 보험 한도가 계약상 책임의 상한이 아니라는 선언. 한도를 넘는 부분은 자기 부담으로 남습니다
하도급자 담보하도급을 주는 경우 동등한 보험을 요구하고 증명서를 징구할 의무

고지의무 — 과거 산재이력은 반드시 알립니다

근재·사용자배상 인수심사에서 과거 재해 이력은 중요한 고지 대상입니다. 치료가 진행 중인 건, 산재로 승인되지 않은 신청 건까지 포함해 사실대로 기재해야 합니다.

요율이 올라갈까 우려해 누락하면, 정작 사고가 났을 때 보험금 지급이 거절되거나 계약이 해지될 수 있습니다. 이력이 있다고 해서 인수가 거절되는 것은 아니며, 재발 방지 조치를 함께 설명하면 조건부로 인수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적하 담보 중복 — 무역조건을 먼저 봅니다

설비를 국내에서 제작해 수출하는 구조라면 운송 구간의 담보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무역조건(인코텀즈) 자체가 매도인에게 부보 의무를 지우는 조건이 있습니다. 이 경우 계약자가 이미 적하보험을 수배하고 있는데 발주처가 별도로 화물 담보를 요구하면 중복이 발생합니다.

반대로 매수인 부보 조건인데 계약서에는 아무 언급이 없어 운송 구간이 통째로 비는 경우도 있습니다. 무역조건과 계약서 보험 조항을 나란히 놓고 대조하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담보 범위 수준(전위험 담보인지 열거위험인지)까지 함께 확인해야 실질적인 대조가 됩니다.

일정 — 증명서 발급이 가장 마지막입니다

영문 보험가입증명서는 증권 발행과 보험료 납입이 완료된 뒤 발급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리고 발주처는 대개 현장 착수 전 제출을 요구합니다.

여기에 종목이 여러 개이고 일부는 현지 조달이 필요하다면, 각각의 인수심사·발행·납입·발급 리드타임이 직렬로 쌓입니다. 착수일에서 거꾸로 계산해 일정을 잡지 않으면 현장이 멈춥니다.

공사 기간이 1년보다 짧더라도 증권 기간은 통상 1년입니다. 준공 이후 완성작업 위험이 남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준공과 동시에 종료할 것인지 유지할 것인지를 미리 정해 두는 편이 좋습니다.

본 글은 익명 검토사례를 바탕으로 계약 조항 해석과 보험 설계 구조를 일반화해 정리한 것입니다. 미국의 보험 규제는 주별로 다르고 개정될 수 있으며, 담보 범위·면책 조항·배서 명칭은 보험회사와 약관에 따라 다릅니다. 보험료·보상한도·자기부담금·특약 적용 여부 등 모든 인수조건은 보험회사의 인수심사 후 확정됩니다. 특정한 인수 결과나 보상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현지 법령 해석과 계약서 문언의 법적 효력에 관한 판단은 법률자문의 영역이며 본 글은 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수주 검토 단계 체크리스트

  • 보험 조항 표 아래 일반 조건 문단까지 원문으로 확보했는가
  • 보험회사 요건에 해당 주 인가 문언이 있는가 — 국내 증권으로 충족 불가
  • 근재를 현지에서 조달해야 하는 구조인가 (국내 제도와 대체 관계 아님)
  • 계약 구조가 design-build인가 — 설계책임 담보 필요
  • 설치 중 목적물 자체의 손해를 담보할 종목이 포함돼 있는가
  • 추가피보험자 배서가 진행 중 작업과 완성 작업 두 가지 모두인가
  • 우선비분담 · 대위권 포기 · 해지 사전통지 요구 여부
  • 요구 한도를 기초 증권만으로 맞출 수 있는가, 우산이 필요한가
  • 과거 재해 이력을 빠짐없이 정리했는가 (치료 중·불승인 건 포함)
  • 무역조건과 계약서 화물 담보 요구가 중복 또는 공백인가
  • 착수일 역산 — 인수심사부터 영문 증명서 발급까지의 리드타임
  • 준공 이후 완성작업 위험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정리

미국 발주처 계약의 요구보험은 목록을 채우는 문제가 아니라 조건을 맞추는 문제입니다. 같은 종목·같은 한도라도 어디서 발행된 증권인지, 어떤 배서가 붙어 있는지에 따라 이행 여부가 갈립니다.

그리고 이 판단은 견적 이전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현지 조달이 필요한 항목이 있다면 준비 기간이 가장 긴 항목이 되고, 착수 일정 전체를 좌우하기 때문입니다.